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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지도자상 역대수상자
한국여성지도자상 역대 수상자
※ 직책은 수상당시의 직책입니다.
구분대상젊은지도자상특별상
제1회
(2003)
박 동 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김 기 혜
여성노숙자센터
‘수선화의 집’ 소장
제2회
(2004)
정 광 모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한 비 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제3회
(2005)
장 명 수
한국일보 이사
김 성 주
성주 인터내셔날 사장
제4회
(2006)
윤 정 옥
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김 영 미
분쟁지역 전문
프리랜서 PD
제5회
(2007)
조 화 순
전 달월교회 목사
방 귀 희
방송작가, 솟대문학 발행인
제6회
(2008)
이 인 복
숙명여대 명예교수,
나자렛성가회 이사장
이 소 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제7회
(2009)
황 연 대
전 한국장애인
복지진흥회 부회장
임 오 경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감독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제8회
(2010)
박 영 숙
한국여성재단 고문
이 지 선
<지선아 사랑해> 저자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
제9회
(2011)
주 선 애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
김 문 정
뮤지컬 음악감독
최 영 아
다시서기의원 원장
제10회
(2012)
이 효 재
경신사회복지연구소
소장
임 영 신
이매진피스 대표
박 선 영
국회의원
제11회
(2013)
이 희 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이 애 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강 경 화
UN 인도지원조정국
사무차장보
 
수상자 소개- 대상 (2003년)

박동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1935년 11월13일 출생

학력

1954년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
1958년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1964년 서울대 신문연구소 1년 과정 수료
1972년 미국 오리건대학교 대학원 신문학 석사

경력

1959년~1968년 동아일보 기자
1972년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강사
1975년 숙명여대 시사영어 강사
1976년 대한가족계획협회 홍보부장
1988년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 대외담당관
1993년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역임
상훈
1982년 국민훈장 석류장(사회개발 부문)
1986년 국제가족연맹(IPPF)자원개발부문 창의상 (전국16개소에 인구시계탑 건립)
1995년 제2회 세계가정의 날 국무총리 표창
활동사항

박동은씨는 복지에 대한 기반이 미약한 현실 속에서 대한가족계획협회, 유니세프 등에서 활동하면서 여성의 권익성장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헌신적으로 기여해 왔다. 특히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 홍보활동을 펼치며 여성의 지위 향상에 크게 공헌했으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사무총장으로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개발도상국의 어린이 지원에 힘쓸 수 있도록 이끄는데 큰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

동아일보 수습기자 1기생으로 입사한 박동은 사무총장은 당시 여기자로선 드물게 사회부, 지방부에 근무하면서 1967년 월남전에 특파되어 1개월간 취재 보도를 한 바 있다.
또한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홍보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는 슬로건 아래 두 자녀 가정의 정착과 고질적 남아선호 사상을 불식시키고자 노력했다. 또한 아동·여성의 삶의 질 향상과 모자보건의 중요성, 아들선호 편견타파, 인구 억제와 빈곤퇴치 등을 주제로 가능한 모든 대중매체와 인적 자원을 동원해 대중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이 시기에 박 사무총장이 제작한 계몽영화 및 비디오 자료 만해도 50여 편에 이른다.
1993년부터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면서 40여 년간 수혜국의 위치엣 개발도상국 어린이를 지원함으로써 한국유니세프의 위상을 정립하고 유니세프 국가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또한, 지난 10년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세계에 알리는 홍보교육사업(아동권리 주창)과 모유수유권장사업을 적극 펼쳐왔다.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만들기 운동’ 을 펼치며 31개 병원을 선정하고, 개발도상국 어린이를 돕기 위한 기금모금사업 실시, 후원자모집과 대중모금 확장으로 연간 모금액을 미화 6백만 달러로 끌어올린 바 있다.
40여 년간의 사회생활 경험을 통해「아동복지편람,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 사회복지총서」중 ‘국제기구의 아동구호’를 집필했으며 각종 잡지나 전문지에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 ‘내전지역의 현실과 인권’ 등의 글을 기고하는 등 아동과 여성의 권익향상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수상자소개- 여성지도자상 (2003년)

김기혜

여성노숙자센터 ‘수선화의 집’ 소장
1945년 4월 4일 출생

학력

1967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3년 서강대 평생교육원 상담심리과목 수료, 한국심리상담연구소 상담심리학 수료
2002년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졸업(사회복지 전공),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 취득

경력

1968년~1969년 영국 차타트은행
1969년~1982년 미국 몬산토회사
1992년~1996년 부모교육(PET) 강사, 서울시교위 청소년상담원 자원봉사
1998년 여성노숙자의 집 ‘화엄동산’ 소장
2002년 여성노숙자센터 ‘수선화의 집’ 개소
상훈
1999년 서울시 노숙자대책협의회 표창장
2000년 서울시 표창장
활동사항

김기혜씨는 복지시설이나, 정부지원, 사회단체에서조차 소외되어 있는 여성 노숙자들의 삶을 돌보는 일에 자신의 생애를 걸고, 여성노숙자들이 가정으로 안전하게 복귀하여 사회적 지위 개선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데 헌신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정부나 복지기관의 재정적인 도움 없이 여성 노숙자의 자활의지를 충분히 자립할 공간을 마련하여 소신 있고 투명하게 시설을 운영해 오고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봉사활동을 해온 김기혜 소장은 대학시절 아현동 산동네 빈민촌과 종로2가 뒷골목 넝마주이 천막촌에서 야학강사 활동을 했다.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며 심리학을 공부한 김 소장은 좋은부모교육(PET)강사로 활동하면서 좋은 인간관계 교육을 펼쳤다. 신문 기자인 이후 파리로 건너간 김 소장은 파리성인문화학교(CNA)에 다니면서 입양아, 고아원, 노숙자 시설(Foyer), 양로원 등에 관심을 가지고 수차례 방문하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눈을 떴다.
1998년 한국에 귀국한 김 소장은 여성노숙자의 집 화엄동산의 소장직을 맡았다. 천주교 신자인 김 소장은 사람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데 종교가 장애가 된다고 여기지 않았기에 기꺼이 헌신했다. 영등포역, 용산역 등을 돌아다니며 노숙여성들을 직접 상담하고, 취업 병원 알선, 귀가 지도를 하면서 3년간 400여 명의 여성노숙자들을 시설로 입소시켰다.
화엄동산에 입소한 여성노숙자들이 3개월이라는 입소 기간 제한으로 온전하게 자립할 수 없는 것에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던 김 소장은 결국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여성노숙자시설인 ‘수선화의 집’을 개소하기에 이르렀다. 풀뿌리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는 수선화의 집은 현재 20~60대 여성 15명이 살고 있다. 알콜 중독 남편의 폭력을 피해 가출하거나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한 여성 등 대부분 우울증과 불안증, 결벽증이나 피해망상증에 시달리는 중복장애인이라 더욱 손길이 필요한 이들이다. 특히 여성노숙자들은 호적상 남편이나 가족이 있는 사람이 많아 정부 지원도 못 받으며, 일반 복지시설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기에 이들이 자립한 뒤에도 친정처럼 오갈 수 있도록 편한 집으로 가꾸고 싶다는 것이 김 소장의 유일한 바람이다.

수상자 소개- 대상 (2004년)

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회장
1929년 11월 25일 출생

학력

1950년~1952년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1959년~1961년 미국 아메리칸대학교 매스커뮤니케이션학과 연수

경력

1951년~1980년 평화신문 /서울신문 /연합신문 /한국일보 기자, 한국일보 논설위원
1968년~1970년 한국여기자클럽 회장(1975-1977)
1967년~1989년 서울YWCA 이사(1967-1985) /회장(1985-1989)
1973년~1975년 전문직업여성클럽 한국연맹 회장
1978년~현재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1979년~1982년 대한YWCA연합회 실행위원
1982년~1984년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 회장(1992-1994, 1996-1998)
2001년~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 금연협의회 회장
2002년~현재 경원대학교 겸직교수 및 재단이사장
2003년~현재 한국에이즈예방재단 이사장(2001~현재 한국에이즈재단 총재)
상훈
1995년 WHO 금연메달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 - 소비자보호(재정경제부)
1998년 올해의 여성상(한국여성단체협의회)
2002년 한국여의대상 길의료봉사상-에이즈예방(한국여의사회)
저서
유전자조합식품의 정체(일본자손기금 고와까 준이치, 정광모 공저)
활동사항

정광모 씨는 탁월한 능력과 소신 있는 추진력으로 한국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책임의식과 사회공의가 살아있는 소비자운동을 사회 전역으로 확산시켰으며, 국제 활동에서도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최근에는 금연운동을 비롯한 에이즈예방운동을 펼치며 국민건강 향상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며 한국 여성지도력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6.25 전쟁 시절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던 정광모 씨는 1951년 평화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성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언론계에서의 정광모 씨의 활약은 여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 변화에 디딤돌이 되었다. 사회정의를 위해 진실을 좇아 일선을 누볐던 그녀에게 YWCA와 같은 여성단체는 그녀의 전문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장으로써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한국 여성의 지휘 향상은 물론 여성들의 주체의식을 고무 시키는 일에 앞장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광모 씨는 1960년대 한국 사회에 소비자운동의 개념을 심어주며, 여성들의 사회 활동영역을 넓히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68년 국내 최초로 서울YWCA에 소비자고발센터를 개설하여 경제발전의 틈바구니에서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는 소비자의 권리를 찾아주었다. 1970년대에는 소비자단체들을 연대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소비자운동가들을 키워내고 소비자고발 체계를 확립하는 등 한국 소비자운동의 틀을 만들어냈다. 이는 올바른 기업정신을 일깨우는 계기를 마련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확립하는 데 기초를 세우고, 우리 상품의 질을 향상시켜 국제경쟁력을 갖추는데 이바지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일하는 여성에 대한 관심을 쏟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도 열정을 다해 참여하며 우리 차 마시기 캠페인, 만화 모니터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요즘에는 국민 건강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 사회가 보다 건강해질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로서의 정광모 씨.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진취적인 의식으로 우리 사회를 바르게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미래 한국 여성들의 영원한 멘토이다.

수상자 소개- 젊은지도자상 (2004년)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1958년 6월 26일 출생

학력

1986년 홍익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91년 미 유타대 언론대학원 국제홍보학과 졸업

경력

1989년 미국올림픽조직위원회 홍보부, 이탈리아 로마 범종교국제회의 기획진행팀
1990년~1993년 버슨-마스델라 한국지사 마케팅부 차장
1993년~2000년 전세계 오지 여행
2001년~현재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저서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활동사항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새로운 분야에 대한 담대한 도전정신으로 오지 탐험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함으로써 한국 여성지도력의 지평을 넓히고 미래의 지도자들에게 세계를 향한 도전의식과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이제는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으로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지구촌 곳곳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인류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품고 열정적으로 헌신하고 있다.

“세계가 너희들 무대다” 라고 강조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세계일주의 꿈을 품었던 한비야 씨는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국제홍보 전문가로서의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오지 탐험가의 길로 들어섰다. 7년 여에 걸쳐 세계 89개국의 세계 오지 여행 경험을 책으로 펴낸<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과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우리 땅을 걸어다니며 쓴<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구호활동가가 되기 위하여 중국어를 배우면서 1년간 중국을 여행하고 쓴<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을 통해 그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역할 모델로 떠올랐다.
한비야 씨가 긴급구호 활동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은 자기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힘없는 사람들과 나누며 세상의 불공평과 맞서 나가고자 하는 가슴 속의 열정 때문이었다.
월드비전을 통해 내전과 기근으로 얼룩진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네팔 등에서 전문적인 구호활동을 펼치면서 그녀가 가진 전문적인 능력과 경험, 에너지들을 아낌없이 다 쏟아내고 있다.
목숨이 위태로운 전쟁의 현장에서 난민들에게 구호식량과 깨끗한 식수를 보급하고, 학교를 수리하고, 기아들에게 영양죽을 배급하는 일이 그녀에게는 의무나 거창한 인류애가 아니다. 가까이에서 삶의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대안을 들고 뛰어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을 구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기에 그녀는 오히려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 한국과 한국인이 그들과 함께 했다는 것을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그녀는 믿는다.
그녀의 창조적이고 감성적인 지도력이 가장 잘 발휘되는 현장이 바로 긴급구호 현장인 것이기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구호활동의 현장에 남아있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바람(hope)의 딸, 지구의 딸 한비야 씨는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수상자 소개- 대상 (2005년)

장명수

한국일보 이사
1942년 3월 31일

학력

1963년 이화여자대학교 신문학과 졸업
2001년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명예박사

경력

1963년 한국일보 입사
1987년~1999년 한국일보 부국장, 국차장, 이사 겸 주필
1988년 한국여기자클럽 회장
1999년~2002년 한국일보 사장
현재 고구려연구재단 이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사, 유니세프 이사,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민간위원,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서울문화재단 이사
상훈
1985년 최은희 여기자상
1994년 관훈언론상
1998년 자랑스런 이화인상
2000년 장지연 언론상
2004년 삼성언론상
활동사항

장명수 님은 여성이 불모지였던 언론계에 일반기자로 입사하여 여기자로는 한국 언론사상 최초로 기명칼럼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언론 분야에서 전문적인 활동력을 향상시켜왔다. 또한 뛰어난 추진력과 역동적인 지도력으로 바른 언론 운동을 주도하는 활동에 기여해왔다. 성평등 사회를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 원칙과 정도를 지켜내며 후배들에게 활동의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 책임 있는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다.

이화여고 재학시절 「거울」기자로 활약하면서 졸업식에서 신문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장명수 님은 당시 교장선생님의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이며, 특별한 재능이 있다. 이 재능을 개발하여 사회를 위해 사용하라’는 말씀을 좌우명처럼 지켜왔다.
한국일보에 입사하면서 사회부, 편집부 등에서 기자로 활동을 하였고, 1982년부터는 여기자로서 한국 언론사상 최초로 매일 ‘여기자 칼럼’을 쓰기 시작하여, 후에 ‘장명수 칼럼’으로 바꾸기까지 총 2,100여 회를 집필하였다.
대다수의 남성들이 반대하는 정신대 문제의 기사화 등을 통해 여성의 눈으로 사회를 보고 균형 있는 시각으로 기사를 집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군사독재 시절 다른 신문들에서 다루지 못하는 사회정치적 문제들을 올곧은 정신으로 꼬집고 평함으로써 목마른 갈증을 해결해주기도 하였다. 또한 여성의 인권은 여성의 연대 없이는 확보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여성들에게도 도전과 책임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1998년에는 한국일보 주필 겸 이사가 되었으며, 1999년에는 한국일보 사장으로 언론계 최초 여성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여성 최초’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새로운 역사를 써 왔으며, 다양한 사회단체에서의 역할을 통해 이 사회의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노력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수상자소개- 젊은지도자상 (2005년)

김성주

(주)성주인터내셔널 사장
1956년 11월 19일 출생

학력

1979년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업
1981년 Amherst College 사회학과 졸업
1983년 London School of Economics 대학원 수료
1985년 Harvad University 대학원 수료
2000년 Amherst College 인문학 명예 박사학위

경력

1982년~2000년 프랑스 Chaffoteaux Maury사와 미국Bendix Electronics사의 한국내 project advisor, 합작생산추진기획담당
1986년~1988년 Korea Business World (한국 경제 잡지)의 미국 지사장
1990년 (주)성주 인터내셜과 (주)성주D&D 설립
현재 독일MCM (MCM Products AG) 회장,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 국민운동이사, APEC 준비위원회 자문위원,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명예홍보대사
상훈
2002년 한국언론협회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경제부문)
2004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올해의 여성상
저서
수필집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
공동저서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Recreating Asia-Visions For a New Century 」
활동사항

김성주 님은 여성기업 경영인으로서 도전정신과 투명한 기업경영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여성의 진취성을 알리고 이 사회 새로운 여성기업인의 상을 구축하는 노력을 해왔다. 여성에게 불리한 기업문화를 투명한 문화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지식인들과 기업인들에게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되는 사회변혁의 꿈을 소신있게 실천하고 있다.

보수적이고 성차별적인 제약을 벗어나 역동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살기 위해, 대학 졸업 후 미국유학을 떠난 김성주 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프리미엄들을 등지고 혼자힘으로 경제적문제를 해결해나가며 사는 법을 배워나갔다.
오랜 노력 끝에 아버지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사업가의 길로 뛰어들어 1990년 성주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고, 작은 것 하나까지도 발로 뛰며 경영하는 진취적인 정신으로 경영을 하였다.
여성기업인으로서 부당하게 생각되었던 술과 뇌물의 관행을 건강한 문화로 변화시켜 투명한 경영과 전문성을 인정받았고, 세계를 상대로 하는 개척정신으로 국제기업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
깨어있는 여성과 기업인의 윤리를 강조하고 세계무대 속에서 한국 여성을 알리는 일에 열정을 쏟으며, 젊은 여성들에게 도전과 희망의 정신을 불어넣어주려 힘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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